화엄사에서 쉼을 찾다.
절이란 무엇 하는 곳일까? 템플스테이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제가 어렸을 적 기억으로는 절은 잘못을 하거나 소원을 빌러 가는 곳 정도로 알고 있었으며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문을 지날 때는 인상이 험악한 사천왕이 버티고 계셔서 왠지 조금은 의시시하고 무서운 곳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성장하면서 관광차 둘러보는 활동과 부처님이 오신 날 절을 찾아 합장하며 머리 숙여 소원을 빌어 본 것 말고는 친숙함이 없었던 터였다.
그래서 그저 스님들이 속세를 떠나 부처님의 마음을 배우고 익히며 수행하는 곳이라는 정도로만 인식하며 육십하고도 여섯 해를 살아온 터다.
그런 제가 지난해에 이어 금년에도 템플스테이 길에 올랐다.
템플스테이가 무엇일까? 템플스테이란 전통문화가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산사에 머물며 수행자의 고요한 일상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템플스테이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궁금했다. 검색창에 ‘템플스테이란’ 단어를 쳐보니 템플스테이는 2002년 FIFA 한․일 월드컵이 열렸을 때 외국인 관람객들의 숙박시설 부족으로 시작됐다고 전해지고 있다. 월드컵이 치러지는 2002년 5월 31일부터 6월 30일까지 30여 일 동안 1천 명의 외국인과 1만 명의 내국인이 템플스테이를 체험했다고 한다. 총 11,000명에 달하는 참가자의 수도 성과였지만, 이 기간 동안 CNN, 뉴욕타임즈, BBC, NHK 등 전 세계 언론에서 템플스테이를 집중 보도하면서 한국불교와 템플스테이가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외국인은 물론 내국인들로부터 좋은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지금은 외국인은 물론 우리나라의 남녀노소 모두가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 위하여 이용하고 있다.
월드컵 이후 우리들의 삶이 더욱 윤택해지고 여유로워지면서 힐링(healing)이라는 키워드가 생겨나면서 템플스테이는 이제 우리들의 삶의 일부가 되어 우리 곁으로 다가와 있다.
2009년 OECD 관광보고서에서는 전 세계 가장 성공적인 5개 문화콘텐츠 가운데 하나로 템플스테이를 선정하기도 했으며,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02년 이후 10년 동안 70만 명이 템플스테이를 체험했을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 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8월의 끝자락을 달리고 있는 27일 오후 2시30분경 대형 관광버스를 가득 매운 일행들과 함께 출발하여 4시경에 화엄사에 도착했다. 걸어서 가게 되면 당연히 속세를 떠나 수행자의 길로 들어선다는 일주문을 통해 들어갔겠지만 차가 경내 안으로 들어가 생각 없이 일주문을 지나 조금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화엄사를 둘러싸고 있는 짙은 녹음들과 경내로 통하는 수많은 나무들의 영접을 받으며 템플스테이 숙소로 들어서니 잘 정돈된 경내 환경과 맑고 깨끗한 산사에 마음을 빼앗긴 듯 연신 “아! 좋다.” 라는 말과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늦게 도착한 탓인지 템플스테이를 주관하는 부서에서는 독촉을 한다. 가져간 짐을 방에 놓기 바쁘게 거사님이 안내하는 곳으로 가서 템플스테이 과정에서 지켜야할 일들을 영상을 통해 마음에 담았다. 서둘러 교육을 마치고 삼라만상의 모든 것들을 깨워 일상을 알려주는 4가지 소리를 듣기 위해 범고 (法鼓) 앞에 섰다. 질긴 가죽이 만들어 낸 법고의 소리는 네 발 달린 축생의 부류를 제도하기 위해서라지만 산사 에 울려 퍼지는 순간 내 가슴이 더 동요를 일으킨다. 투박하고 날카로운 느낌을 주는 쇠가 만들어 낸 운관 (雲管)의 소리는 날 짐승들을 깨우는 소리란다. 가슴을 휘젓는 짜릿함으로 다가온다. 또 물고기를 깨운다는 목어(木魚)의 소리를 만들어 내는 스님의 손놀림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며 치고 계실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궁금함도 잠시였다. 곧바로 이동하여 범종 앞에 섰다. 스님의 몸짓에 온 누리를 깨우는 범종이 소리를 토해낸다. 온 산사를 뒤흔드는 소리에 육중함과 위대함이 묻어나며 범사에 감사하고 생명의 소중함과 손에 쥔 것을 놓아야 다시 잡을 수 있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생각난다.
저녁 공양을 마치고 잠시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졌다. 아름다운 산사의 자연을 벗 삼아 배구공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축구도 하며 즐거움을 만들어 내고 웃음을 만드 니 고요한 산사가 갑자기 소란 속으로 빠져든다. 사람들이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든 다.
잠시 휴식차 안으로 들어갔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정담과 부처님의 이야기로 시간을 낚고 있었다.
“차 한 잔 하시죠.” ‘도제’ 스님의 말씀에 찻상 앞에 앉는다.
“스님, 사천왕문과 대웅전의 부처님 곁에 계신 보살님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라는 저의 질문에 ‘도제’ 스님은 기다렸다는 듯 사천왕문은 불법을 수호하기 위해 동서남북 네 방위를 지킨다는 문입니다. 원래는 고대 인도의 바라문교에서 모셨던 신들인데 부처님의 가르침에 감명을 받고 귀의하여 부처님과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 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일주문에서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은 후에 다시 한 번 자신의 마음을 점검하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대웅전에 부처님을 중앙 에 모시고 왼쪽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님이 오른 쪽에는 실천을 상징하는 보현보살님이 보좌하고 있다는 말씀을 듣는데 ‘도제’스님이 왜 포교당인 ‘길상사’에 거하시면서 어려운 이웃과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의 고통과 어려움 을 함께 하시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특히 실천 보살님이신 보현보살님의 가르침 인 실천의 중요함을 강조하시면서 오늘 날 우리 아이들이 엄마의 젖을 먹으며 정서 적으로 안정감을 갖고 엄마의 가슴 뛰는 소리를 들으며 포근함과 사랑을 느끼며 성 장하여야 남을 위하고 자신을 다스릴 줄 알고 인내하며 어려운 이웃도 생각하는 마 음들이 생기는데 동물의 젖을 먹고 자라 제멋대로라며 옳음을 실천하지 않는 요즈 음 아이들의 세태를 질타하시는 모습에서는 40여년을 교직에서 생활 하다 밖으로 나온 나에게 큰 가르침으로 다가왔다. 모처럼 자리한 스님과의 시간이 참으로 귀 하게 정리되는 순간이었다.
저녁 예불시간이었다. 운동 휴유증으로 발목과 무릎이 아파 무릎을 꿇고 앉지 못 하고 양반 자세로 앉았다. 스님의 예불 소리에 맞추어 절을 하는데 몇 번을 하고 나니 더 이상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자리에 앉아서 예불 에 참여하는데 많 은 사람들에게 죄송한 마음이었다. 예불 시간이 끝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으 며 ‘너무 좋다.’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나는 아직 부처님 앞에 절 할 수 있는 자격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으며 다시는 템플스테이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녁 예불이 끝나고 모두가 함께 하는 시간이었다. 동그랗게 둘러 앉아 오색실로 매듭을 짓는데 두 사람이 짝이 되어 도움을 주고받으며 하나 둘씩 엮어 간다. 한 매듭 한 매듭이 모습을 드러낼 때 마다 “야, 예쁘다. 참 잘 하고 있네요.” 하며 힘 을 실어준다. 더욱 신이나 손놀림이 바빠진다. 부처님이 맺어준 고운 인연 속에 웃 음과 믿음의 싹이 자란 듯하다. 완성된 매듭을 손목에 두른다. 좋아하며 웃음과 함께 완성의 기쁨을 몸짓으로 만들어 낸다. 부처님 곁으로 다가선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행복이라 생각된다.
미소와 함께 ‘도제’ 스님의 사회로 그룹별로 나누어 장기 자랑이 시작 되었다.
노래하고 춤도 추는 외국인들과 함께 하며 마음을 나누는 내국인 그리고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발산하는 아이들이 어우러져 극락의 세상을 그려 내고 있다. 고요한 산사에 울려 퍼지는 노래 소리 춤사위에 조금은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모두 를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귀한 시간으로 자리 매김 되어 가고 있는지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스리랑카 젊은이의 춤사위에 함성마저 터져 나온다.
외국인과 내국인이 한데 어울려 서로를 이해하는 값진 시간이며 민간외교관으로 활동할 수 있는 매우 가치 있는 시간이었으나 잠시였다.
9 시가 되면 스님들께서 주무시니 그만 멈추라는 전갈이 왔다. 너무 짜여 진 틀 속에 다 넣어 놓고 간섭하는 것 같아 아쉬움으로 남는다. 세상은 모두가 함께 하며 여유롭고 유연하게 살기를 원하는데 이 곳 만은 변해 가는 모습에서 동떨어져 반 드시 수행하시는 스님들의 일상에 맞추어진 느낌이 들어 서운함으로 다가 온다. 속세와 속세를 떠난 삶이 뒤엉키는 모습에서 참 나를 발견하고 부처님 곁에서 모두 가 하나 될 수 있는 오락을 즐기는 일에 잠시 스님들께서 배려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련 과정일까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멀리 이국에서 와서 일터에서 나라와 자신의 삶을 모습을 보다 더 잘 가꾸기 위 해 쉼 없이 일해 온 친구들이라 자연 속에서 쉬면서 짜여 진 틀 속에서 보다는 마 음껏 젊음을 발산하며 서로 간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활동시간이 많았으면 좋아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자, 이제 각자 방으로 가서 잘 주무십시오.” 라는 관계자의 부탁 말씀은 서운함으로 다가 왔다. 방으로 옮겨와 씻고 자리에 누웠는데 여름날의 매서운 더위를 식혀줄 비가 내리며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빗물과 마당으 로 쉼 없이 내리치며 만들어 내는 소리는 중생들의 아픔을 달래주고 산사의 고요함 을 깨운다. 살아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게 하는 생명의 소리 인양 쉬이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이웃 방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도 정답게 들여온다. 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 풀벌 레 소리는 여유로움을 찾는 나에게는 힐링으로 다가와 나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 져들게 하며 산사의 밤은 그렇게 시간을 몰고 달려갔다.
새벽 3시에 “일어납시다.” 라는 ‘도제’스님의 부름에 깨어났지만 새벽 예불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불심이 없는 탓도 있었지만 다리가 아파 무릎을 꿇고 앉는 것 조차 힘들어 잠시 편한 길을 택했다.
새벽 공기를 마시기 위해 잠시 밖에 나가 마루에 걸터앉았다. 밤새 쉼 없이 내리 던 빗소리와 가끔씩 들려오는 풀벌레 울음소리도 고요한 산사의 아름다움에 더해져 마음에 여유와 차분함을 가져다준다. 욕심을 버리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사함을 갖는 자에게 주는 큰 선물이며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이며 쉼의 소리였다.
다음 날 아침 5시 30분에 아침 공양을 하고 숲길 걷기가 예정되었으나 그치지 않는 비로 인하여 일정에 다소 변화가 있었다. 9시가 되도록 자유로운 시간의 연속 이었다. 자고 있는 이, 책을 읽는 이, 정담을 나누고 있는 이, 차를 마시며 정을 나누고 있는 이, 경내 관광을 나선 이, 다음 행사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이, 혼자서 자연을 마음껏 즐기고 있는 이들의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에서 모두가 여유롭고 넉넉해 보인다. 때마침 주변을 빙 둘러싼 산허리에 곱게 깔린 안개가 자 연의 아름다움을 연출해 내며 아침 경내의 분위기를 더해준다.
염주 만들기 시간이었다. 어렵지 않은 과정이라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 았다. 완성된 염주를 손목에 끼워가며 완성의 기쁨과 함께 카메라 앞에 손목을 모 아 ‘찰칵 찰칵’ 핸드폰으로 모습을 담아내며 함께 웃음을 나누는 일은 모두가 하나 된 모습이었다.
34,5도로 열을 올리며 내리쬐던 무더위에 지친 대지를 마음껏 적셔주려는 듯 어제부터 내리던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오전을 뒤로 미루어 내가며 계속되는 가운데 점심 공양 후 서운함을 달래기 위하여 1시간가량의 화엄사 숲길 따라 걷기를 마친 후 경내를 빠져 나온 시간은 오후 3시경이었다.
일행은 쌍계사를 찾아 버스를 타고 또 달리기 시작한다. 서운함을 채우기 위하여 떠나기 전 숲 속 길 걷기가 많은 피로감을 주었는지 모두들 말이 없다.
30여분의 질주 끝에 쌍계사에 도착했다. 일주문과 사천왕문을 지나 대웅전으로 가는 길목에 9층탑이 우뚝 솟아 있다. 모두들 발길을 멈추어 서서 사진을 찍느라고 정신이 없다. 멀리 스리랑카에서 온 수뎃, 수렛이, 사둔, 크리샨, 애란가 등은 부처 의 나라 젊은이답게 기와 시주에 예불문은 적고 흡족해하며 기와를 안고 카메라 앞 에서 멋진 포즈를 취하며 한국 불교의 멋을 마음껏 즐기고 있는 듯했다.
30여분의 쌍계사 관광을 마치고 다음에 간 곳은 지리산 계곡이었다. 꼬불꼬불 굽이굽이 돌고 돌아가며 오르고 오르며 목적지인 계곡 에 도착했다.
모두들 시원한 물소리와 아름다운 풍경에 잠시 쉼의 호흡으로 올라오는 과정의 지루함 을 달래기 위하여 계곡 주변으로 빙 둘러 서 거나 앉아서 지리산 풍광과 함께 쉼의 여유 를 부린다.
잠시 침묵 속에 아름다운 숲과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어우러져 일행에게 힐링 을 선사한다. 이따금씩 살며시 뺨을 스치는 바람 소리에 살포시 나부끼는 나뭇잎들 도 골짜기 소식 담아 남해바다로 달려가는 계곡물의 리듬타고 흔들거린다.
잠시 침묵을 깬 것은 계곡 물에 풍덩 뛰어들어 일행들에게 순간의 기쁨과 함성을 선물한 꼬마 천사들의 모습과 ‘라샨’의 자멱질 그리고 물싸움의 모습은 어린 시절로 데려다 주는 듯하여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계곡의 물 속 나라 여행이 정리되고 다시 차에 오른다. 저녁을 먹기 위해 차가 움직인다. 배가 많이 고픈 듯 “아, 배고프다.” 소리가 예서제서 들려온다.
‘지수’스님의 지인 농가에서 정성껏 빚어낸 음식으로 배를 채우기 시작한다. 배추김치, 콩나물, 돼지고기 주물럭 반찬에 밥맛이 꿀맛이란다. 손놀림도 빠르다.
“막걸리 잡수시겠어요?” 주인 양반의 권하는 소리가 그렇게 반갑게 들려온다.
“예, 주세요.” 라는 말이 무섭게 가져다 준 막걸리를 컵에 부어 템플스테이의 성 공과 우리 일행들의 건강을 위하여 건배를 하는데 주변의 아름다움과 농가 사람들 이 펼치는 나눔의 정겨움 위에서 함께 한 이국인들과 봉사자들이 하나 되어 웃음꽃 을 피우는 모습은 이곳이 바로 극락이려니 하는 마음이 들었다.
저녁 공양을 마치고 감사의 인사말을 건네고 계곡을 빠져 나온 시간은 5시45분 이었다. 1시간 30여분의 질주 끝에 광주에 도착했다. 어둠이 밀려오고 피곤함도 함께한다. 내리자마자 감사와 수고하셨다는 말만 전하고 부랴부랴 집을 행했다. 집에 도착하니 8시 30분이었다. 씻고 자리에 누우니 금새 잠이 들었다. 화엄사가 쉼의 아름다움과 깨우침을 주었고 이국인들에게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움과 한국인의 친절함 자상함 그리고 이웃과 함께 하려는 멋진 모습을 선물한 귀한 템플스테이 시간이었다.
테플스테이가 쉼의 의미와 방법을 가르치며 놓아야 잡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 를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을 주고 외국인 근로자들 다문화 가정의 엄마와 아이들 그리고 한국의 봉사자들이 하나가 되어 서로를 이해하고 배우는 가 치 있는 시간으로 자리매김 되었으나 늘 마음을 주고받으며 생활했던 청년 ‘두사르’ 가 아픔을 치료하기 위하여 잠시 고국으로 돌아가 함께 하지 못함은 서운함으로 남아 있다.
다음 날 ‘두사르’에게 템플스테이를 마쳤다는 소식을 ‘카카오 톡’에 사진과 함께 올려 전하며 다음 해에는 함께 하길 기대하는 마음을 부처님께 발원해 본다.